디카시마니아 정기모임에 다녀오다

 디카시마니아 정기모임에 다녀오다


  이상옥 시인의 디카시마니아 정기모임에 다녀왔다. 보통 ‘디카시정모’로 약칭되는 이 모임이 한달에 한번씩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왔다. 어떤 모임인가 궁금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7월 18일 모임에 이상옥 시인의 초대요청이 있었다. 그래놓고 디카시마니아 카페 ‘정모 알림’에 얼마전 있었던 고성디카시 축제 행사때 보냈던 ‘능소화’를 올려놓고 있었다.

  디카시마니아 모임인데 모임의 취지에 맞게 능소화를 쓰면서 여러 시상(詩想)에 시달렸던 이야기나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가기로 약속 해놓고 보니 모처럼의 마산문협 여름문학축제 행사와 시간이 겹치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정일근 시인이 와서 강연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공교롭게 빠지게 된 것이다.

  어쩐다? 그러나 마산문협 행사는 내가 순서에 들어있지 않으니 빠진다고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일근 시인에게도 전화로서 양해를 구하고 다음 기회에 만나면 된다. 지난 1일의 통영문학제 행사때도 잠시 만나지 않았던가. 행사장 사진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눈을 감겼다. 보니 그였다.

  정일근 시인은 고교(마산상고)와 대학(경남대학)을 마산에서 다녔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성장토양이 된 곳이 마산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를 생각하면 그의 고교생무렵과 대학생 때의 백일장 생각이 난다. “그 무렵 백일장에 그가 참가했다하면 장원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우리 문인들 간에는 ”또 정일근이야!‘ 했던 것이다. 그 아니며 잘 쓰는 학생이 없느냐 하는  뜻도 되었지만 “그가 그렇게 잘 쓰느냐?” 하는 탄식같은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일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잘아는 마산문협은 진작부터 그의 초청이야기가 있어 왔다. 작년 이맘때도 올해같은 이 자리에 그가 일순위에 들어있었다. 그랬는데 동티모르에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치료받는바람에 무산되고 이번에 드디어 오게 된 것이다. 그로서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떻든 나는 대우백화점 12층 강당에서 있은 마산문협 가고파여름문학축제 행사 1부의 시낭송대회 행사에는 참석하고 막상 정일근 시인의 강연회와 시낭송대회 시상식 행사가 진행되는 갤러리에는 얼굴만 내밀어 흔적만 남기고 목적지 ‘문득그리움’이란 낭만적인 이름이 유혹하는 디카시정모모임 장소로 차를 달렸다.

  6시 모임이나 피치못할 사정이면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이상옥 시인은 진작 이야기 했었다. 그렇다고 나는 시간을 어기려고 생각지 않았고 약속을 되도록 지키려고 시간을 의식하며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는 5분 정도 지체한 것 같았는데 전화를 걸어왔다. 어디쯤이냐고.

  업무상 자주 나다녔던 이 길은 나에게 익숙한 길이어서 산인역 부근이라면 쉽게 찾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그만 그길로 통하는 산인공단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놓치고 지나쳤던 것이다.  가야읍까지 다 가서 다시 유턴하여 돌아오느라 시간이 다소 지체된 것이다.

  나까지 꼭 10명이었다. 보통 15명 내외가 되는데 오늘은 좀 적다는  이상옥 교수의  말이다. 이날 누가 오느냐에 따라 참석자가 달라질 것이다. 진주, 함안, 창원, 오늘은 처음 참가한다는 멀리 부산의 마니아도 한사람 끼여있다. 모두 대단한 성의들이다. 이런 자리를 매월 만들어 나가는 이상옥이라는 인물도 새삼 보통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디카시’라는 크게는 문학에서, 작게는 시의 세분화 한 장르를 창시한 사람인데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인기있는 시인이 온다면 자리가 더 많이 찼을 것이다. 일당 백 어쩌고 자위를 하며 먼저 저녁을 먹는다. 이 집의 단골 메뉴인듯 비빔밥이 나왔다. 주변 회원들이 여러 맛난 나물들을 챙겨 넣어주었다. 맛있는 비빔밥이었다. 차 한잔을 마시고 내 이야기 시간을 주었다

 항상 느끼지만 이런 자리는 늘 난감하다. 그냥 시나 한편 읽으라면 그런대로 읽겠는데 입담도 없는데다 내 생각을 펼치자니 진땀 나는 일이다. 나는 ‘능소화’를 쓰면서 배회했던 상념을 나름대로 횡설수설 했다.


   “잠시 땀 식히시지요.”

   느긋이 권유하는 찬물 한 바가지


  이 디카시를 쓰면서 이 꽃의 꽃말인 ‘명예’를 생각했고 일명 ‘양반꽃’이라고 하여 한동안 상민들은 이 꽃을 좋아하는것만으로도 양반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되었던 아픈 역사도 떠올렸다, 그리하여 겨우 이 정도의 시로서만 형상화 시킨것에 대해 미안해 했다. 그리고 주제넓게도 디카시와 포토포엠의 혼돈에 대해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디카시는 짧아야 그 특징을 살릴 수 있다는 즉석 제의도 하며 내 시간을 떼웠다.

권선자 시인 등
권은좌 시인 등
이상옥 시인과

by gnbook | 2009/07/19 16:37 | 오하룡 문학방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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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권선자 at 2009/07/20 01:04
선생님 여기서 뵙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이렇게 강물따라 흘러 가 봅니다.
짧은 시간 속에서 가슴 따뜻해 지는 말씀 많이 주셔서 무척 배부른 시간 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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