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종 시집 “산책길”을 읽고
오하룡
창원에서 활동하는 성기종 시인이 세 번째 작품집 시집 “산책길”을 펴내었다. 그는 32년생으로 예순 후반기에 늦깎이로 문단에 나와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모두 90편의 신작을 담고 있다.
1부에는 ‘행복한 바보’ 제목으로 22편, 2부는 ‘엄처시하’ 제목으로 역시 22편, 3부는 ‘거래’ 23편, 4부는 ‘흐르는 낙동강’ 제목으로 23편이 담겨있다.
부별로 나누어진 중간 제목을 보면 어느 정도 그의 작품의 성향을 알게 한다. ‘행복한 바보’, ‘엄처시하’ 라는 제목으로도 근황이 짐작되게 하며 ‘거래’, ‘흐르는 낙동강’은 그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각박한 상황과 그의 고향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향수로 작품에 승화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어서다.
성기종 시인은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정통 행정가다. 여러 곳의 부군수 부시장을 지냈고 마지막으로 도립 경남예술회관장을 맡았었다. 그는 정년을 10개월 앞두고 불행하게도 뇌졸증에 걸려 아쉽게 공직을 떠났다. 다행이 비교적 가벼운 증세였던 탓에 고향인 창녕 부곡면 학포에 정착한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에 뜻을 두고 원고지와 가까이 하기 시작하였다. 그도 학창시절에는 문학열병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직장에 나가면서 생활에 내몰려 거리를 두고 있다가 이제야 그 본 영역을 찾았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며 시와 산문을 모은 “성기종의 시와 산문”이란 이름의 문집을 펴내었다, 문학에 자신감과 재미를 붙인 그는 말년의 생활수단으로 장만하여 애정을 가지고 가꾸던 과수원을 처분하고 도청소재지 창원시로 나와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 과수원을 가꾸기에 체력이 딸리는데도 원인이 있었다.
이미 펴낸 문집으로 본격 문학 활동을 한다고 무슨 거리낄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도 남들이 다하는 소위 추천을 통한 등단절차를 거쳐 당당하게 문학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월간 ‘한울문학’에 투고 하여 2005년에 정식 등단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연이어 등단 기념으로 시집 “나의 낙동강”을 펴내었다.
이번 시집에는 말년에 그를 괴롭히는 병마와 어쩔 수 없이 공생해야 하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이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달관된 경지에 이른 인생관을 거리낌 없이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몇 작품 중심으로 살펴보자.
단감농사/ 10년의 이야기요/ 우선 병충해를 막는 일이/ 걱정이 태산 같다/ 열매를 맺어도 걱정 안 맺어도 걱정/ 열매가 많으면 솎아야 한다/ 비가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다/ 가을에는 파는 걱정/ 얼기 전에 따는 걱정이다/ 저장을 하면/ 시세를 걱정하며/ 시장과 창고를 들락거린다/ 걱정이 걱정을 낳아 병이 들어/ 애만 태우다가/ 벽촌에는 양의가 없으니/ 그래서 고희를 더 넘기고/ 고향을 등졌다(걱정타령)
그가 체력이 딸리면서도 과수농사를 짓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사란 비가와도 안와도 시종일관 걱정거리이다. 그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그러면서 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엿보게 하고 있다. 농사는 좀 젊을 때 지어야 하고 또 전문적으로 알고 지어야 할 것 같다는 무언의 암시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이 체력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뒤늦게 농사에 뛰어들어 겪는 초보 농사꾼에게 이런 걱정거리가 얼마나 부담되는 지를 그려주고 있다.
뇌세포는 죽어도/ 허우대는 멀겋다/ 처음에는/ 전화번호도 못 외우고/ 암산은 맹추다/ 상황판단이 안 되고/ 동시행동이 어렵다/ 옛날에는/ 신언서판이/ 분명해서/ 몇 군데 고을살이도/ 너끈히 했는데/ 지금은 병들고 늙었다/ 다행히 상상력이 살아있어/ 시 쓰는 흉내를 한다(그만해도 다행)
이 작품은 그가 뇌졸증에 걸려 오늘을 살고 있는 상황을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는 헌칠한 키에 젊었을 시절에는 미남 소리를 들을 정도의 신언서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병이 들어 말도 행동도 어줍어 졌지만 그가 얼마나 사려 깊게 민완 공무원 생활을 했는지 짐작하게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암산도 안 되고 전화번호도 못 외우고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 것은 물론 행동조차 부자유스러운 처지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서글프고 답답하였으랴. 그러나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정신도 맑아져 시를 쓸 정도의 상상력이 뒷받침되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를 읊고 있다. 다음 작품도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작품이다.
나는 뇌 병변 장애 6급/ 그래서 어눌하다/ 병이든지 20년/ 다행이 쥐꼬리만 한 상상력이 있어/ 시를 쓴다/ 돌을 만나면 둘러가고/ 욕심을 만나면/ 피해가리/ 세상은 발맞추기가/ 어렵다/ 나은 보폭대로/ 내가 쉬는 호흡대로/ 내가 쉬는 호흡대로/ 개울의 물처럼/ 흘러가리라(나는 나대로)
그의 병세가 계수 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이 작품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병이든지 몇 년이 되었는지도 알려두고 있다. 그리고 ‘돌을 만나면 둘러가고. 욕심을 만나면 피해가리’라고 읊음으로써 그의 평소의 실천적인 인생철학 또한 스스럼없이 잘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세상에 발맞추려면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머뭇거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무모하게 돌과 같은 장애물 앞에서는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지혜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이란 과욕을 말한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필요악이다.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활력소의 역할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욕이 빚는 비극적인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는 이런 과욕도 피하는 것이 상책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념까지 이 작품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호흡대로 정직하게 숨쉬며 지금까지의 걸어온 속도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뇌리에 박힌 여인/ 두 사람이 있다/ 한 분은 나를 낳은 분이고/ 또 한사람은/ 평생을 내 곁에 있다/ 어머니는 추억이요/ 현실은 아내였다/ 새끼를 치며/ 쓰라림과 괴로움을 같이 하고/ 평생을 같이 늙는다/ 어머니의 무덤이 고향이고/ 아내가 있는 곳이 가정이었다/ 당신이 있어 좋았고/ 무릎을 치며 탄복하오(여인)
누구나 공감하는 두 여인에 대한 정의를 명쾌하게 규명해내고 있다 하겠다. 남성에게 있어 어머니와 아내를 제외하고 어떤 여인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와 아내는 남성들의 가장 가까운 여인상으로써 영원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가 계신 곳이 고향이라는 사실, 지금은 비록 어머니가 무덤에 가 있는 상황이라도 변하지 않는다. 아내 역시 그녀가 있는 곳이 가정이며 그녀가 비록 이승을 떠나 무덤에 먼저 가 있더라도 가정과 동떨어지게 여기지 않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임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
이상 성기종 시인의 시 세계를 잠시 살펴보았다. 그의 시는 요즘 젊은이들이 시도하고 있는 첨예 적이고 감각적인 유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어쩌면 고식적이고 고답적이며 정체된 의식세계의 전개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읽힌다. 그리고 쉽고 평이 한듯하면서도 이야기가 있고 감동이 있다. 이 정도면 문학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일흔이 넘은 황혼 세대이거나 그와 비슷한 신체적인 아픔을 겪는 독자들에게는 공감의 영역이 넓고 깊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시인)
# by | 2009/03/27 20:31 | 오하룡 문학방 | 덧글(1)




